2008년 07월 15일
A God's Chaplain-키신저, 카플란, 그리고 질서
무질서는 부정의보다 나쁜 것이다. 부정의는 단지 세계가 불완전함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무질서는 모든 사람에게서 정의를 박탈한다. 무질서는 일상생활의 평범한 행위마저 위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큰 부정의가 작은 무질서보다 나쁠 수도 있다. 1980년대 이라크는 질서있는 사회였다. 너무도 질서가 잘 잡혀 있어 나라 전체가 거대한 감옥 같을 정도였다. 반면 이란은 혁명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이라크보다는 이란에서 더욱 안전함을 느꼈다.
"무정부시대가 오는가, p.147,148" -로버트 카플란
이 대목은 로버트 카플란의 정치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 무정부시대가 오는가라는 책의 '키신저, 메테르니히 그리고 현실주의'라는 장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카플란은 키신저의 사상과 생애를 조망하면서 현실주의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무질서는 불의보다 나쁘다는 키신저와 카플란의 생각이다.
한국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에 따르면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이 갖는 기본적인 권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모든 권리의 근원은 행복 추구권이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사회권, 청구권을 갖는다. 자유권은 소극적 자유의 권리로, 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권위로부터 부당하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와 거주이전의 자유, 사상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이다. 평등권은 개인이 인종, 성별, 나이, 재력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고, 개인의 상황에 적절한 대접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참정권은 적극적 자유권으로 국가의 대표를 선출하고, 또 공무를 맡아 직접 국정에 참여할 권리이다. 마지막으로 청구권은 다른 기본권이 침해당했을 경우 이의 시정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말한다.
교과서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 모든 권리는 국가권력을 필요로 한다. 기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이의 침해를 시정할 정부가 필요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무정부상태에서는 이러한 기본권을 전혀 누릴 수 없다. 키신저와 카플란의 통찰도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유권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또 이의 침해를 방지할 권력을 필요로 한다. 발언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여 개인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보장하며, 사법부의 법적 권위를 통해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권의 경우에도 기득권층과 사회의 강자들이 소수파나 약자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이를 제지할 권력을 필요로 한다. 참정권의 경우에 제도적으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할 법과 제도를 필요로 한다. 청구권의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애시당초부터 정부에 대한 권리이므로 정부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누릴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정부를 다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카플란도 말하고 있듯, 지나친 권력행사로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침해하는 정부의 경우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김정일 정권은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면서 아나키즘의 혼돈은 피하고 있는진 모르겠으나, 국민들의 모든 종류의 기본권을 상당한 수준으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혹자는 키신저의 분석을 '제3세계에나 통할 법한 비현실적 가정'이라고 논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이 붕괴될 경우 북한 지역에 형성될 카오스 상태를 고려하면 이를 간단히 흘려듣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정의롭고 효율적인 정치체제 아래서 살아온 우리가, 권력과 정치의 근본적인 속성과 원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 아닐까.
# by | 2008/07/15 21:58 | 무거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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