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극장 모델을 통해 살펴본 한국 대학입시 과열에 대한 간단한 견해

모델의 선택

 우선 위의 포스팅은 sonnet님이 몇달 전에 블로그에 올리신 것이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채승병님의 간략하고도 멋진 요약이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한다.) 

 "(소넷님은)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며, 때로는 공권력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모델을 통해 설명하셨다.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한국의 대입경쟁을 고려함에 있어 이 문제가 꽤나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는 주장을 하셨다."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구도에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까?, 채승병님의 periscop forum에서 발췌

 이 글에서 내가 밝히고자 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1. 불난 극장의 모델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2. 한국의 대입 과열은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 
 3. 현실적 대안들
 이 중에서 2번에 초점을 맞춰 글을 전개할 것이다. 1번은 향후 논의의 전개를 위한 전제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3번은 뚜렷한 논리성을 갖춘 내용이라기 보다 가벼운 개인적 견해여서 그렇게 큰 비중을 둘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하는 제안의 대략적인 틀만 이해하면 된다.


 1. 불난 극장 모델의 현실적 해석

 (1)극장의 외부: 대학
 이렇게 설정한 이유는 극장 외부는 극장 내부 관객들의, 그리고 대학은 현재 입시경쟁에 매달리는 학생들의 지향점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대학 진학을 모든 학생들의 지상 목표로 인식하며 학생들도 이를 어느정도 내면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부정적이라고 몰아가려는 생각은 없다. (이러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글이 다음의 글이다. 이 글은 공신이라는 인터넷 수험 커뮤니티의 공신 중 한명인 유기성이라는 분이 쓴 글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지나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타당한 글이다. '공부를 해야하는, 좀더 현실적인 이유)

 (2)혼란스러운 극장의 내부: 입시경쟁
 극장 내부는 특정한 목표를 가진 구성원들이 목표달성을 위해서 경쟁을 벌이고, 또 이로 인해 막대한 혼란(현실 세계에서는 사회적 비용)이 빚어진다는 측면에서 입시경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극장 내부에서 관객들이 생존을 위한 탈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입시경쟁에서의 학생들은 대학 입학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 목을 매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대졸자, 그것도 명문대 졸업자가 돈을 더 많이 번다(평균적으로는). 그리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너무나도 큰다. 우선 부모들이 학생들에게 어느정도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성교제, 보다 자유로운 옷차림, 흡연과 음주의 허용. 또한 사회적으로도 대학생들을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에 비해 우대한다. 대학생들의 단골 아르바이트인 과외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대학은 고등학교에 비해 좀 더 놀 기회가 많다. 이성과 교제할 기회, 미팅할 기회, 놀러다닐 기회, 동아리에 미쳐 취미생활을 할 기회 등등.. 대학생들만이 누리는 특전은 상당하다. 
  반면 입시경쟁으로 인한 막대한 혼란으로는 첫째, 재수생의 발생으로 인해 연간 천문학적인 돈(한달 재수 학원비가 50만원 안팎인데 여기에 재수생 숫자 십수만을 곱하고 다시 각종 잡비를 더하면 계산하기조차 두려운 액수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낭비까지 고려한다면 그 비용은 추산하기조차 힘들다)이 학원비로 소모되고 있다는 점 . 둘째, 재학생들의 경우에도 많은 비용을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는 점. 셋째, 학생들이 대입경쟁에만 매달림으로서 각종 창의적인 능력을 계발할 기회를 상실한다는 점과 같은 부분이 지적될 수 있겠다. 이중에서도 교육비의 막대한 지출이 가장 큰 사회적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3)출구: 대학 입학
 출구를 대학 입학으로 해석한 이유는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다. 다만 여기서는 모델에서의 출구와 현실에서의 출구가 갖는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모델에서의 출구는 말 그대로 통행로일 뿐이다. 즉 출구들 사이의 차이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대학 입학은, 어떤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즉 출구의 성격이 각각 다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들 수 있는 출구(즉,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출구)의 수도 한정되어 있다. 이 부분이 다소 모호한데, 뒤로 가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한국의 대입 과열은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

 한국의 대입 과열은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어떤 교육정책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대입 과열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다만 그 정도와 양상에 있어 차이를 보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불난 극장 모델을 이용하여 밝힐 것이다. 소넷님의 모델에 근거해 현실적으로 제기 가능한 대안들의 실현 불가능성을 지적하기로 한다.

 (1)대안 1: 출구를 늘리기
 출구를 늘린다는 말은 대학 입학의 기회를 넓힌다는 말이다. 이는 구체적인 정책적 제안으로 대선 공약에까지 등장했던 사안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민노당의 대학 평준화론과 노무현 정부가 일시적으로 구상했다 철회한 계층별 쿼터제이다(계층별 쿼터제란, 저소득층 자녀들의 경우 대학 커트라인보다 낮은 성적을 받더라도 대학에 입학시켜주고 학비는 정부에서 부담하자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서울대의 입학 기준이 평균 수능 1등급이라고 치면 저소득층 자녀는 평균 2등급이나, 3등급을 받아도 입학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학 평준화의 경우에는 모델과 완전히 아귀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모델에서의 출구의 수 확대는 대학 정원의 절대수 확대이지만, 대학평준화의 취지는 정원 절대수 확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구의 구조나 갯수에 손을 대서 빠져나가는 과정을 보다 쉽게 만든다는 점에서 출구의 수 확대는 대학평준화나 연관지을 수 있다. 이 제안은 보다 쉽게 대학에 입학하게 한 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자격시험을 엄격하게 치르자는 것이 골자이다. 아무튼 일부 개혁론자들은 '출구를 늘리는' 정책을 통해 입시경쟁을 완화하여 사교육비를 줄이고 대학간 서열화를 소멸시켜 학벌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정책들이 실효성을 가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출구를 늘리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뿐더러 무리하게 적용했다가는 고등교육의 근간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한다.

 출구의 평등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정책 차원에서 우수학생을 인위적으로 모든 학교에 균등하게 분배하고(무조건 뺑뺑이를 돌리지 말고 성적순으로 그루핑을 해서 우수 학생이 한 학교에 몰리지 않도록 하면 된다), 또 우수 교원을 인위적으로 모든 대학으로 잘게 흩어 놓을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국 대학의 시설을 보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출구 늘리기 논리의 가장 큰 맹점이다. (앞으로 나올 부분이 본래 모델의 성질을 어느정도 훼손하는 서술일 수는 있겠으나..)출구를 무리하게 늘리다가는 극장 건물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 이를 현실 차원의 언어로 바꿔 말한다면, 기계적이고 무리한 대학의 평준화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평준화 조치들은 결국 모든 대학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여, 고등교육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하고, 전대미문의 유학 엑소더스를 유발할 공산이 크다. 
 
 왜 그럴까? 잉크를 예로 들겠다. 소량의 잉크를 큰 물병에 풀어 놓으면 오래지 않아 잉크는 사라지고 물만 남게 된다. 물론 물 색깔은 전과 그대로이다. 잉크를 우수 학생과 우수 교원으로 생각하고, 물을 대학으로 보면 된다. 유능한 학생들과 뛰어난 교원들을 모든 학교에 비슷한 숫자로 분배한다고 한다 해도 이러한 사람들은 수가 한정되어 있어 학교당 극 소수만이 배정받게 된다. 즉, 서울대생을 전국의 수백개 대학에 풀어놓으면 학교당 십수명 정도의 소수 인원만이 배당되는 셈이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시설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평준화가 될 경우 모든 대학의 시설을 같은 수준으로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화수분을 가지지 않은 이상 교육재원에도 한계가 있어서 이는 불가능한 정책이다. 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간단하다. 하향평준화가 이뤄진다. 현재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면 된다. 극소수의 뛰어난 학생과 교수들은 열심히 하고 나머지 교수와 학생들은 시간을 때우려고 학교에 '놀러나오는' 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뛰어난 학생들은 그대로이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우수한 인재를 흩어놓으면 상호경쟁과 협력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증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전반이 루즈한 분위기로 흘러가서 그나마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도 무력한 사람들의 대열에 휩쓸릴 수 있다.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뼈아프게 경험한 점도, 면학 분위기의 상실과 지나치게 느슨한 경쟁으로 인한 학습의욕의 감퇴였다. 전국 모든 대학교가 '그저 그런' 대학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고교 평준화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몇몇 지역에서 시행된 고교 평준화의 결과 학교들의 진학성적과 면학분위기가 형편없이 하락했고, 결국 과거의 명문고로 불리던 학교들은 현재는 선배만 명문인 동네 학교로 전락했다. 혹자는 고교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학력수준은 그대로라고 할 지 모르나.. 인문계 고등학교와 특목고에 하루씩만 수업을 참관하러 갔다 와보면, 이런 소리를 절대 할 수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이들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점은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혹자는 입시 성적만 가지고 학교의 질을 따질 수 있느냐고 하는데..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는 못하지만 다같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학교는 세상에, 적어도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인과관계를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험에 따르면 학교의 성적이 낮은 이유는 그 학교의 해체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 성적의 하락은 교사의 통제력이 없어지고, 학생들의 근면함, 성실함이 실종되며, 일부 불량한 학생들이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선도하고, 또 패배감과 무력감, 허무주의가 학교를 지배한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대학교육의 쇠퇴는 고교생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에 대한 전면적 불신감을 낳아, 해외유학생들의 극적인 증가를 유발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유학비가 없어 소외된 학생과 학부모들은 심한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2)대안 2: 극장 내 인원수 줄이기
 화재 상황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는 우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이 아무리 좁다고 해도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면 화재 상황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모두가 대피할 수 있다. 이 대안은 대입 경쟁의 층위를 다양화해서 경쟁을 완화하자는 의견이다. 즉, 지금처럼 60만의 학생이 똑같은 체제 안에서 경쟁하기 보다는 개인의 수준별, 적성별로 다른 리그(?)에서 경쟁하게 하여 과열을 줄이자는 생각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periscop forum의 채승병님이 잘 설명해 주시고 계셔서 여기에 링크하도록 하겠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물론 각론에서는 채승병님과 나의 의견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구도에 창의적 해결책이 존재할까?, 일본의 과외열기가 주춤하는 이유)

 경쟁 참가자를 줄이는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다. 일단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극장을 여러 개 마련한다. 그리고 나서 복수의 극장에 원래 하나의 극장에 들어갔었을 사람들을 여러 개의 극장으로 들어가도록 '유도(강제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한다. 이를 현실의 언어로 바꾸자면... 입시의 틀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우선 현재 대입 경쟁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즉, 졸업을 한다 해도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지방의 대학밖에 진학 못하는 학생들, 그리고 아예 성적이 안 되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같이 어떻게 보면 '허수'라고 볼 수도 있는 인원들이 많다(고교 졸업 정원의 30%는 대학에 못 간다. 안 가는 건가?).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 연예인이나 요리사와 같은 특정 직업군을 지망하는 학생들도 현재는 느슨하게나마 대입 체제 내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전문대의 경우에도 다소 입시요강에 차이가 있기는 해도 직업탐구영역 과목을 포함한 수능을 치는데다, 전문직 지망자들 중 상당수가 학교 내신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느슨하다는 표현을 썼다) 이들을 위해 별도의 입시를 만드는 것이다. 즉 현재와 같이 언어나 수리와 같은 다소 아카데믹한 성격의 시험 대신 극히 실용적이고 간단한 시험을 치러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의 전문대와 같은 직업 교육 분야에서 특성화된(상식적으로 이러한 학생들이 학자나 지적 숙련을 요구하는 직종으로 유입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입 교육시장의 부피가 줄어들어 경쟁이 완화될 수 있다.(물론 이 부분에서 내가 주장한 것들은 지극히 단순화되고, 또한 숙고를 거치지 않은 단견이라 반박의 여지는 많을 듯하지만.. 대략적으로 내가 말하는 메시지의 중심 의미에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그렇지만 이 방안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단기간 내에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다시 모델으로 돌아가보자. 아까 모델에서 내가 사람들을 서로 다른 극장들로 '유도'하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새로 마련된 극장, 그러니까 직업교육 중심의 전문대로 가려 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할까? 간단하다. 임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졸자가 전문대학이나 고졸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더 대접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임금 지급이나 취업, 사회적 인식과 같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지 않은 상태에서 '극장 늘리기' 정책을 실행해 봤자, 결국 모두들 한정된 4년제 종합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한 피튀기는 경쟁을 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문대 진학을 막는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개혁하자고. 하지만 이는 사람들의 인식의 문제(일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어쨌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낫다는 인식), 혹은 사회의 관습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딱히 이를 고칠 만한 방법이 없다. 학교에서 전문대나 종합대학이나 마찬가지라고 교육한다거나, 공익광고로 전문대 출신을 우대하자고 하는 그런 대입 논술 답안에나 나올 법한 방안이 실질적 효과를 지닐 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한겨레 신문에서 가져온 대졸과 고졸의 임금차이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으면 연락 바란다. 즉시 삭제조치하겠다.

 3. 현실적 대안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경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속에서 경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차피 경쟁을 없애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급진적 교육단체들의 주장대로 혁명적 방안을 취한다고 해봤자, 앞에서 논의한 것과 같이 실효성이 없거나,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선 입시 과열의 가장 큰 문제점인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수학습방법의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사교육비 지출의 상당수는 사실은 불필요한 것들이다. 우선 내 예를 들자면, 중학교 때는 그냥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인근의 좋다는 영어학원을 무의미하게 다녔다(물론 내 영어실력이 늘지 않았음은 당연하다). 고등학교 때에도 사실상 큰 도움도 되지 않는 인터넷 강의들을 충동구매로 구입하여 열심히 들었었고, 별달리 가르쳐 주는 것도 없이 강사들이 시간땜만 하는 고가의 논술학원들을 몇 년씩이나 다녔다. 나는 거의 5년 넘게 학원을 다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사교육은 인강 몇 개와 중3때 다녔던 영어학원, 고3때 다녔던 수학 보습학원,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는 재수종합반 정도밖에 없는 듯하다. 학원들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우선 내가 스스로의 진로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아니 정확히 말해서 진로에 대한 교육과 정보가 부족했다는 편이 맞겠다) 남들 따라서 학원에 다녔고, 또한 학원에서도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7~80년대식 암기식 교육이나 검증되지 않은 강사 개인의 노하우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의 학습 계획 수립이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비효율이 극심해서 사실상 다니나 마나한 학원들을 너무나도 많은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이 다니게 되고 다닌다 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공부 멘토링이나 학습 코칭과 같은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공부 계획을 수립하고 거기에 맞춘 사교육을 받게 하며, 또한 학교와 학원 전반에 걸친 교수학습방법의 개선을 통해 학습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경쟁의 질 자체를 높여야 한다. 경쟁을 해야만 한다면 그속에서 학생들이 최대한 많은 것들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효율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는 공교육의 틀 내에서 이뤄지는 편이 보다 효율적인 듯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수학습방법의 개선을 통해 학생들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작문이나 발표 훈련, 보고서 작성 훈련, 팀 프로젝트, 독서이력철(학생들이 읽은 책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평가의 척도로 삼는 제도. 현재 도입 추진중아며 서울의 세화고에서는 시범적으로 실행중)제도 시행, 봉사활동의 활성화 등을 통해서 학생들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거치는 가운데서도 실질적으로 사회에 나가서, 혹은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있는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장학금 제도나, 제한적인 쿼터 제도(현재 실시되는 저소득층 자녀나 낙후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할당제와 같은)를 확대하여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보다 쉽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p.s. 1. 개인적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대충 이러한 종류의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넷님의 포스팅을 보고 이를 어느정도 구체화시켜 보았다. 

2. 글 말미에 꼭 밝히고 싶은 점은 나는 사회과학적 모델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따라서 모델에 근거한 사고라는 측면에서는 엄밀하지 못한 측면을 보일 수 있다. 이점은 널리 양해 바란다. 대신에 나는 나의 현재 위치를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나는 지금 재수하고 있는 학생이다. 따라서 입시경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실제로 이바닥(?)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론적 지식의 부족을 비교적 최근에 얻은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상쇄하면서 글을 전개하려고 노력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학문적 엄밀성 보다는 '팔딱팔딱 뛰는 활어같은 지식'을 얻어갔으면 한다.

3. 이 포스팅을 하면서 내가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불난 극장 모델을 최대한 활용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소넷님의 글로부터 트랙백만 하고 그냥 두서없이 내 의견만 말하게 될 것 같아서 상당히 신경을 썼는데, 의도대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소넷님이 포스트에서 명시한 여러 부분들(model thinking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모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기쁘다.

 4. 늘 가볍게 내 생각을 나열하기 보다는 보다 깊이있고 치밀한 탐구를 하고 싶은데, 아직은 내 지적 능력의 한계로 인해서 그게 잘 구현되지는 않는 듯해서 아쉽다.
 
 5. 마지막으로 말하고픈 것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해 색안경을 끼지 말고 솔직하게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물론 관점이라는 것이 다량의 정보를 일관적이고 손쉽게 처리하는 도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교육이라는 분야를 끌어다 쓰지 말았으면 한다(일부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특히 그렇다..).

by reske | 2008/07/06 21:23 | 학생이 바라본 교육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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