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2일
청소년 사회운동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가끔씩 언론보도를 통해 고등학생들의 학생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들 단체에 다소 호기심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같은 학생으로서도 이들의 운영방향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다.
우선 소위 청소년 운동이라는 것들을 보면 지나치게 특정 정치집단의 입장만 대변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 안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아리라..) 입시경쟁 폐지 혹은 완화, 청소년인권(흔히 두발자유화와 0교시폐지로 대변되는) 회복 등등.. 솔직히 좀 심하게 말해서 이런 부분은 특정 정치집단들의 단골메뉴 아니었나 말이다. 경쟁 반대, 개인의 인권 강조... 반면 교육선진화와 같은 반대측의 주장은 학생들의 입에서 조직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인권을 필요없다거나, 경쟁이 좋기만 하다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청소년 운동이 정치색을 띠고 어떤 방향으로 편향된다는 점을 말하고픈 것이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이번 촛불시위에도 다소 이런 성향이 있는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고(소위 청소년 언론이라는 '바이러스'라는 곳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기사가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글이다..), 일전에도 노무현 정부의 입시제도 개혁안 때 반대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열었던 단체들도, 노무현의 반시장적 교육정책에 반대한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나 특목고생들이 아니라, 아예 경쟁 자체를 없애라며 나온 단체들이었다.
문제는 과연 이런 부분이 정말 중요하냐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인권이나 경쟁반대가 청소년운동이 지향해야 할 지상목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으며, 두발자유화같은 부분은 다소 지엽적인 부분이 아닐까? 정말 우리의 헤어스타일이 다른 모든 문제에 우선할 만큼 중요한 문제인지는 의문스럽다. 정말 이런 것들이 청소년들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일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정말 중요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질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공교육은 이미 사실상 붕괴상태로 백약이 무효인 지경에 이르렀고, 우수학생들이 선발제 사립학교로 몰리는 현상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교사 사회가 경쟁 무풍지대가 되면서 수업수준을 높이고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별로 없어서 학교수업의 수준은 충격적일 정도로 저질이다. (그렇지만 분명 열심히 하시고 존경받으실만한 성실한 선생님들도 많으므로, 모든 교사들을 한꺼번에 매도할 생각은 없다..) 뿐만 아니라 이미 학교에서는 대학입시의 핵심적 요소인 수능과 논술을 대비해줄 능력이 없다. 학교수업만으로 수능이나 논술을 대비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런 것이 잘 드러난다. 학교가 입시기관은 아니지만, 분명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은 문제 아닌가. 뿐만 아니라 교수학습방법도 절망적이다. 20년전, 30년전과 다를 바 없는 주입식 교육이 학교교육의 전부이다. 정보를 스스로 찾고, 글을 쓰고 표현하며, 발표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정보화 시대에 맞는 선진적인 교육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들도 문제라서, 이미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학교가 놀이터로 변한지 오래다. 심하게 말해 학교는 분기당 수십만원의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의 사랑방 정도의 역할밖에는 못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한명이 "학교는 학생들이 낮시간동안 사고치지 못하게 잡아두는 보호소 역할밖에는 못한다." 는 냉소적인 농담일 던진 것이 생각난다.)
이것이 정말 우리나라 학생들이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이다. 형편없는 교육을 받다보니 12년간 학교에 열심히 다녀도 리포트 한 장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발표수업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졸업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결국 이런 부분을 메우기 위해 사교육이 필요하고, 또 그나마도 메우지 못해서 외국에서 돌아온 유학파 인재들이나 교포 자녀들에게 밀리고 있다. (한미 FTA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현종씨의 경우 학교를 거의 미국에서 다녔는데, 앞으로는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나 기업가들의 상당수가 이런 외국 학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해가 있을지 몰라 부연한다. 나는 분명히 몇몇 청소년 단체가 제기하는 문제가 정말 논의할 가치도 없는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경쟁의 부작용이라던가, 학생인권의 침해는 분명히 시정되어야 할 요소이다.
다만 내가 문제삼는 부분은 학생운동이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수준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채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고용시장에 내몰리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생운동이 정말 국가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으러면, 그리고 정말 학생들의 실정에 맞는 운동을 하려면 이런 부분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사회운동이 특정 집단의 하위조직으로 변하지 않고 독자적인,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본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학생 시민단체의 운동을 보고 "아 정말 진심으로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야,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 by | 2008/06/22 22:38 | 학교와 공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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