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8일
프라이야와 브리징아멘의 전설-상품으로서의 여성의 몸
군인과 여자 에서 트랙백
지난주 주말에 동아일보 인터넷판을 보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기사 내용은 한 여자 대학생이 일주일에 두 번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당사자는 애인 행세를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지만, 결과적으로만 보면 매춘이나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종종 이런식으로 평범한 여성들마저 돈을 매개로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쩌다 우리네 삶이 이런식으로까지 타락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사실 성의 상품화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형태가 아닐지라도 우리 삶 속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다. 특히 현대사회의 미디어는 젊은 여성의 성적 매력(최근에는 남성들도 상품이 되지만)을 내세워 소비자의 호감을 끌려고 안간힘을 쓴다. 매년 뽑는 미스코리아, 심하다 싶을 정도의 섹스어필을 강조하는 댄스음악, 클릭 몇번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연예인들의 "섹시"화보까지, 이 모든게 성의 상업 컨텐츠화 아닌가.
소위 사회를 "비판"한다는 분들은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자본주의에서 찾고자 하신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하려 하고, 결국에는 인간의 몸마저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전략)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몸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의 상품논리에 지배되면서 오히려 자기 몸을 소외시키고 있다. 대중 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상품으로서의 몸 이미지와 외모 지행적 가치관은 매력적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강화하고, 사람들을 다이어트를 통한 날씬한 몸 만들기 대열에 합류시킨다. 이처럼 대중 매체 속에서 만들어진 획일화된 몸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이상 몸은 없고 몸 이미지만 남게 된다."
-2005학년도 6월 교육과정 평가원 모의고사 中 (평가원 모의고사의 지문은 저자를 특별히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자를 표시하지 않았으니 양해 바랍니다.)
대략 요런식의 비판을 말하는 것이다. 성의 상품화가 일반인들마저 세뇌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를 성 상품화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에는 동조하기 힘들다. 물론 자본주의가 성의 상품화를 중단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을 유통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연 자본주의가 성 상품화의 "근원" 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인다.
다음은 북유럽 신화의 한 대목이다.
"초기시대의 프라이야(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유사한 미녀 여신)는 네 명의 난쟁이들을 찾아가 솜씨가 뛰어난 대장장이들이 진기하게 아름다운 목걸이를 망치로 두들겨 만들어 폭이 넓은 보석들로 장식을 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구경한 적이 있었다. 여신은 목걸이를 차지하고 싶어서 좀처럼 보기 드문 장식품을 대가로 내어 놓았다. 장신구라면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고 대답한 난쟁이들이 여신에게 요구한 것은 그들 모두가 하룻밤씩 번갈아 가며 그녀와 동침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라이야는 화가 나서 난쟁이들의 요구를 물리쳤다. 그런데 브리징아멘이 완성되었을 때, 미녀는 또 다시 동굴로 내려가 시범으로 장신구를 목에 걸어보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프라이야는 금과 보석의 광채에 현혹되어서 목걸이를 무조건 소유하고 싶어 했다. 대장장이들은 대가를 주장했기 때문에, 프라이야는 네 명의 난쟁이에게 하룻밤씩 몸을 허락해야 했다."
-게르만 신화와 전설(198페이지), 라이너 테츠너 지음, 성금숙 역, 범우사
내가 이 대목을 읽고 느낀 기분은 며칠전 동아닷컴에서 매춘을 하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기분과 같았다. 게르만 신화의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내용을 암시한다.
여성의 성은 필요에 따라 상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류역사 내내 인간의 성(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은 상품이었다. 생각해보면 불과 백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돈있는 남성들이 후처를 들이는 일은 칭찬받을만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처럼 심각한 도덕적 결함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이런저런 소설에서 보이듯 일제시대에는 남성들이 고향에는 정략적으로 결혼한 정부인이 있고, 도시에서 사귄 신여성들과 다시 동거를 하는 좋게말해선 연애, 나쁘게 말해선 두집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현재 문제가 되는 간통법의 경우도 사실 처음에는 남성들의 축첩에 따른 여성의 권리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부분은 틀렸으면 지적부탁.) 조선시대에는 더욱 심각했다. 웬만큼 돈이 있는 남성들은 후처를 얻기에 골몰했고, 최고 권력자인 임금은 "하렘"이나 다름없는 궁궐을 지어놓고, 모든 궁녀를 자기 소유로했다. 심지어 이를 질투하는 여성들은 "투기가 많다" 하여 배척까지 받았다. 집밖을 나서면 상황은 더욱 막장이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관기"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요정마다 요즘으로 치면 미성년자 매춘에 해당할 10대의 소녀들이 남성들의 술시중을 들었다. 격에 따라 "2차"를 나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반 홍등가는 말할 것도 없다. 요즘은 단속이라도 하지.. 우리나라만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세계 어느나라의 역사를 뒤져봐도 권력자들이 축첩을 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다. 심지어는 아랍권처럼 아직도 축첩이 법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의 말을 "역시 여자는 돈주고 사야 제맛" 이라거나, "여자들은 모두 창녀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우선 과거부터 인간들이 해온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살인과 강간은 분명 인류역사와 함께해온 범죄이나 그것이 용인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의 상품화도 그것이 예전부터 존재한 것이라고 해서 정당하다고 말해선 안된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성의 상품화는 결코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내놓길 원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프라이야처럼 자신의 몸을 지갑의 지폐처럼 여기는 여자들도 있는 반면, 춘향이처럼 목숨을 걸고라도 정절을 지키려는 여자들도 있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가 여성 적대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여담이지만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성적 좌절감을 여성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한국여자들은 전부 된장, 요즘여자들은 전부 걸레야 등등), 같은 남자로서 정말 찌질한 짓거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 생각에는 여성의 몸이 상품의 지위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근대사회(자본주의사회도 근대사회다.)에서라고 생각한다. 근대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이 뭔가. 바로 (계몽사상에서 비롯된) 인간의 존엄성 아닌가. 인간이 존엄하다는 인식이 내면화되면서 비로소 여성의 몸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며, 따라서 나는 나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상황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시키려는 과거로부터의 경향성, 상품화를 용이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 상품화를 적대시하는 근대적 인간관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고 본다. 어쩌면 남성의 축첩이나 매매춘이 당연시되었던 이전에 비해선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 사회에 환멸을 느끼는 비판가들에게는 그게 그거겠지만.
p.s. 나는 사회의 부조리를 좀 더 긴 호흡에서 보고싶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자본주의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진지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이데올로기가 바뀐다고 사라질 정도로 녹록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난주 주말에 동아일보 인터넷판을 보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기사 내용은 한 여자 대학생이 일주일에 두 번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당사자는 애인 행세를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지만, 결과적으로만 보면 매춘이나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종종 이런식으로 평범한 여성들마저 돈을 매개로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쩌다 우리네 삶이 이런식으로까지 타락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사실 성의 상품화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형태가 아닐지라도 우리 삶 속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다. 특히 현대사회의 미디어는 젊은 여성의 성적 매력(최근에는 남성들도 상품이 되지만)을 내세워 소비자의 호감을 끌려고 안간힘을 쓴다. 매년 뽑는 미스코리아, 심하다 싶을 정도의 섹스어필을 강조하는 댄스음악, 클릭 몇번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연예인들의 "섹시"화보까지, 이 모든게 성의 상업 컨텐츠화 아닌가.
소위 사회를 "비판"한다는 분들은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자본주의에서 찾고자 하신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하려 하고, 결국에는 인간의 몸마저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전략)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몸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의 상품논리에 지배되면서 오히려 자기 몸을 소외시키고 있다. 대중 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상품으로서의 몸 이미지와 외모 지행적 가치관은 매력적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강화하고, 사람들을 다이어트를 통한 날씬한 몸 만들기 대열에 합류시킨다. 이처럼 대중 매체 속에서 만들어진 획일화된 몸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이상 몸은 없고 몸 이미지만 남게 된다."
-2005학년도 6월 교육과정 평가원 모의고사 中 (평가원 모의고사의 지문은 저자를 특별히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자를 표시하지 않았으니 양해 바랍니다.)
대략 요런식의 비판을 말하는 것이다. 성의 상품화가 일반인들마저 세뇌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를 성 상품화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에는 동조하기 힘들다. 물론 자본주의가 성의 상품화를 중단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을 유통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연 자본주의가 성 상품화의 "근원" 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인다.
다음은 북유럽 신화의 한 대목이다.
"초기시대의 프라이야(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유사한 미녀 여신)는 네 명의 난쟁이들을 찾아가 솜씨가 뛰어난 대장장이들이 진기하게 아름다운 목걸이를 망치로 두들겨 만들어 폭이 넓은 보석들로 장식을 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구경한 적이 있었다. 여신은 목걸이를 차지하고 싶어서 좀처럼 보기 드문 장식품을 대가로 내어 놓았다. 장신구라면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고 대답한 난쟁이들이 여신에게 요구한 것은 그들 모두가 하룻밤씩 번갈아 가며 그녀와 동침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라이야는 화가 나서 난쟁이들의 요구를 물리쳤다. 그런데 브리징아멘이 완성되었을 때, 미녀는 또 다시 동굴로 내려가 시범으로 장신구를 목에 걸어보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프라이야는 금과 보석의 광채에 현혹되어서 목걸이를 무조건 소유하고 싶어 했다. 대장장이들은 대가를 주장했기 때문에, 프라이야는 네 명의 난쟁이에게 하룻밤씩 몸을 허락해야 했다."
-게르만 신화와 전설(198페이지), 라이너 테츠너 지음, 성금숙 역, 범우사
내가 이 대목을 읽고 느낀 기분은 며칠전 동아닷컴에서 매춘을 하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기분과 같았다. 게르만 신화의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내용을 암시한다.
여성의 성은 필요에 따라 상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류역사 내내 인간의 성(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은 상품이었다. 생각해보면 불과 백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돈있는 남성들이 후처를 들이는 일은 칭찬받을만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처럼 심각한 도덕적 결함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이런저런 소설에서 보이듯 일제시대에는 남성들이 고향에는 정략적으로 결혼한 정부인이 있고, 도시에서 사귄 신여성들과 다시 동거를 하는 좋게말해선 연애, 나쁘게 말해선 두집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현재 문제가 되는 간통법의 경우도 사실 처음에는 남성들의 축첩에 따른 여성의 권리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부분은 틀렸으면 지적부탁.) 조선시대에는 더욱 심각했다. 웬만큼 돈이 있는 남성들은 후처를 얻기에 골몰했고, 최고 권력자인 임금은 "하렘"이나 다름없는 궁궐을 지어놓고, 모든 궁녀를 자기 소유로했다. 심지어 이를 질투하는 여성들은 "투기가 많다" 하여 배척까지 받았다. 집밖을 나서면 상황은 더욱 막장이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관기"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요정마다 요즘으로 치면 미성년자 매춘에 해당할 10대의 소녀들이 남성들의 술시중을 들었다. 격에 따라 "2차"를 나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반 홍등가는 말할 것도 없다. 요즘은 단속이라도 하지.. 우리나라만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세계 어느나라의 역사를 뒤져봐도 권력자들이 축첩을 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다. 심지어는 아랍권처럼 아직도 축첩이 법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의 말을 "역시 여자는 돈주고 사야 제맛" 이라거나, "여자들은 모두 창녀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우선 과거부터 인간들이 해온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살인과 강간은 분명 인류역사와 함께해온 범죄이나 그것이 용인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의 상품화도 그것이 예전부터 존재한 것이라고 해서 정당하다고 말해선 안된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성의 상품화는 결코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내놓길 원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프라이야처럼 자신의 몸을 지갑의 지폐처럼 여기는 여자들도 있는 반면, 춘향이처럼 목숨을 걸고라도 정절을 지키려는 여자들도 있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가 여성 적대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여담이지만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성적 좌절감을 여성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한국여자들은 전부 된장, 요즘여자들은 전부 걸레야 등등), 같은 남자로서 정말 찌질한 짓거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 생각에는 여성의 몸이 상품의 지위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근대사회(자본주의사회도 근대사회다.)에서라고 생각한다. 근대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이 뭔가. 바로 (계몽사상에서 비롯된) 인간의 존엄성 아닌가. 인간이 존엄하다는 인식이 내면화되면서 비로소 여성의 몸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며, 따라서 나는 나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상황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시키려는 과거로부터의 경향성, 상품화를 용이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 상품화를 적대시하는 근대적 인간관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고 본다. 어쩌면 남성의 축첩이나 매매춘이 당연시되었던 이전에 비해선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 사회에 환멸을 느끼는 비판가들에게는 그게 그거겠지만.
p.s. 나는 사회의 부조리를 좀 더 긴 호흡에서 보고싶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자본주의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진지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이데올로기가 바뀐다고 사라질 정도로 녹록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 by | 2009/07/28 20:25 | 무거운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성 상품화 과연 나쁘기만 한가
프라이야와 브리징아멘의 전설-상품으로서의 여성의 몸 에서 셀프 트랙백 일전에 자본주의를 성 상품화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을 반론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원론적으로는 성 상품화가 나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실생활에 비춰 생각해본다면 조금 다르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성 상품화가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긍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more
버뜨... 매춘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작년 11월에 쓴 글인데 이미 다 읽어 보셨습니다. 매춘은 살인보다는 현대 사회에 훨씬 덜 위협적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경우니까요. 살인처럼 위협적이지 않다면, 인간 본성에 거스르는 통제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대체로 비용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
저게 사실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의 성상품이 비자본주의사회로 유입되는 경우가 없어야 겠지요....
밧뜨.... 횬시창....
뭐 원래 인간들이라는 게 '인간들에게 더 많은 통제력'을 약속하는 듯한 사회주의적인 (혹은 종교적인) 주장에 좀 솔깃한 측면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