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에 대한 허무

 블로그는 내 인생에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블로깅 끝에 남는건 허무라고 생각한다.

 블로깅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는 뭔가는 없다. 설령 내가 며칠밤을 새 "개념글"을 만들어 올린다 해도,

 하루에도 수많은 글이 쏟아져나오는 블로그스피어속에서 그 글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먼지에 쌓인 채 내 블로그 어딘가에 처박힌채 아무도 읽지 않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블로그에 쓴 글이 결국엔 허무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은 책이나 논문과 비교해보면 더 분명하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인용되어 학문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작으나마 금전적인 보상이 돌아오지도 않는다.

 고작해야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잘 읽었다는 짧은 덧글, 추천수, 방문자수의 증가, 가끔씩 달리는 우호적인 트랙백, 조금 재수가 없으면 태클이나 악플 정도가 아닐까. 당시에는 이런 관심이 신나고 재미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허무하기는 매한가지다. 반푼어치의 관심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글을 씀에 앞서서 그 효용을 따진다는게 속물적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임에 앞서 이런 생각쯤 한번쯤 해보지 않는것도 이상한것 아니겠는가. 

 어릴때는 인터넷에서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게 신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은 쉽게 만난만큼 쉽게 깨진다는 것도 알았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야 좋건 싫건 서로를 연결해주는 끈이라는게 존재하지만,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잠수를 타는 순간, 조금의 다툼이 생겨 사이가 벌어지는 순간 모든게 끝이다. 

 옛날 한 3년간 조그만 동호회에서 활동을 했다. 나름 열심히 활동을 한 까닭에 운영진에도 들었고, 정모 정팅도 자주 나갔다. 회원들과 꽤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수험생이 되고,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진 까닭에 잠시 동호회를 접었더니 거짓말처럼, 너무나도 간단하게 모든 관계가 증발해버렸다. 한때는 친했던 회원들이 이젠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내 관심사를 추구한다는 것의 허무함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인터넷은 나와 정치적인 견해, 학문적인 견해가 다른 세력이 장악해버린 상태다. 사회에선 그렇지 않지만 인터넷에서의 나는 소수파에 불과하다. 소수파의 슬픈 점은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험과 지식이 더 쌓이면서 소위 본좌라고 칭송받는 유명 블로거들보다 오프라인의 학자나 연구원들이 훨씬 더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십년 넘게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공분야의 책에 파묻혀 젊음을 불태운 전문가들과, 학부생 수준의 지식과 취미로 읽은 책 몇권으로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같지 않을 터이다. 물론 가끔씩 폴 크루그먼같이 전문적인 블로거가 없는건 아니지만...

 블로깅에서 얻는게 전혀 없지는 않을 터이다. 아마도 글을 쓰면서 여러가지 지식도 얻고, 자료를 분석하고 글을 쓰는 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뭔가에 몰두한다는 데서 얻는 흥미도 있을 것이고.. 말하자면 블로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기 보다도 그 과정에서 뭔가를 얻는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블로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을 쓴다는게 낭비로밖에 생각되질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하잘것없는 자기만족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는걸 깨달아 가기 때문인 듯하다. 장래를 위한 공부, 좀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취미활동, 그리고 웬만한 일이 있어선 깨지질 않을 깊고 소중한 친구.. 그런 것들 말이다.

 결국엔 블로그도 스타리그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미에 불과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재미인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내가 개념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백 투 더 소스 운동에 참가해서 각주, 참고문헌까지 일일이 밝힌 전문적인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끝내는 허무로 끝나버릴 몇쪽의 글을 위해, 나의 사회적인 위치를 유지하기에도 힘겨운 일상에서, 그런 전문적인 글을 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짜낸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그 모든게 너무나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정말로 책을 쓰기 위해서 초고 단계를 블로그 포스팅으로 대체하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실제로 블로깅을 출판의 전단계로 활용하는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무척이나 글을 잘 썼던 그 친구는 나와 같이 블로깅을 했었다. 북로그 형태의 블로그를 운영하던 그 친구는 고2, 고3이 되면서 사실상 블로그를 친구들이 드나드는 친목장소로 바꿨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아예 블로그를 떠나 싸이를 한다. 누군가는 인터넷에서의 진지한 관심추구가 감퇴한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적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이제 더이상 인터넷에서의 알량한 자기만족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세계의 친구들이, 현실세계의 취미생활이, 현실세계의 공부가 더 재미있기 때문에 더이상 블로깅이라는 형태의 못된 마약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무척이나 부럽다. 

by reske | 2009/05/13 23:54 | 무거운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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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민혁의 민주통신 at 2009/05/14 02:28

제목 : 블질과 싸이질은 6개월이 한계다 - 2
지금부터 딱 2년 전에 "블로그와 싸이질은 6개월이 한계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블로그나 싸이질을 지속할 수 있는 기간은 대개 6개월에서 1년이 한계이며, 누군가가 인터넷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을 하면서도 6개월 혹은 1년 이상씩이나 블로그나 싸이질에 매달린다면, 그 사람의 사회생활은 상당 부분 정상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블로그를 하거나 싸이질을 하는 데는 적지않은 품이 들고 또한 상당한 집착(?)이 요......more

Commented by 다언삭궁 at 2009/05/14 05:02
블로그 글쓰기는 부질없는 짓일까? http://boney0000.blogspot.com/2009/05/blog-post_14.html

트랙백을 할 줄 몰라 그냥 이렇게 링크로 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은 또 '내가 밤을 세워가며 이게 뭔 짓인가?'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이군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5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는 1300개 정도의 포스팅을 올렸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자료를 찾아보며 쓴 글도 있고 그냥 간단히 누군가가 써 놓은 글을 정보삼아 펌질한 것도 있습니다. ···
Commented by reske at 2009/05/14 10:33
네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ICEAGE at 2009/05/14 23:21
블로깅이 특히나 그렇겠지만... 무슨일이든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도 크죠...

사실 인터넷이란 협소(?)한 공간에서 실제 만남보다 깊은 관계를 갖는다는건 아직 무리인거 같아요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하기 나름인거 같아요. 어떤 사람은 블로그를 통해 대학갔다고 얼핏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어쨌거나 좋아서 하는일 아닌가요 ^^? ㅋㅋ
Commented by reske at 2009/05/16 09:50
블로그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선 안되겠죠.

블로그로 대학간 사람의 경우엔, 블로그를 자신의 특기적성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로 활용해서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디자인계통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자신의 습작을 블로그에 올리는 식으로 작품활동을 축적한걸로 압니다. 근데 이것도 전형방식이 자유로운 서울대 특기자전형이니까 가능한거지, 전형방식이 시험점수로 고정된 다른 대학에서는 통하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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