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3일
토지조사사업의 진실
오늘 근현대사의 토지조사사업을 공부하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지만,
내가 쓰는 교재는 이룸이앤비의 숨마쿰라우데 근현대사 인데 이곳에서는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났을 때, 많은 토지들이 신고가 되지 않았으며, 조선 총독부는 이렇게 신고되지 않은 토지를 국유지로 만들었습니다."
라고 되어있다. 반면 기파랑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는
"무신고지로 국유지로 편입된 것은 주로 분묘지나 잡종지였는데, 도합 8944필지(0.05%)에 불과하였다.... (중략)..... 전체 토지의 40%에 달하는 무신고지가 발생하자 국유지로 몰수했다는 기존의 주장은 원래부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숨마쿰라우데가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를 요약-해설한 책임을 감안하면, 검인정교과서와 전문 역사서적의 사실관계 서술이 다른 셈인데..
사실 내가 경제사 전문가가 아니라 어느쪽이 옳은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심정적으로야 정확한 통계자료를 인용한 대안교과서쪽에 더 믿음이 가지만, 역시나 통계자료 분석의 오류가능성도 전혀 없는게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만약 교과서의 서술이 틀린 것이라면 큰 문제고, 반드시 시정될 필요가 있다. 수십만명의 고등학생이 잘못된 사실을 배우는 것은 문제 아니겠나.
내가 쓰는 교재는 이룸이앤비의 숨마쿰라우데 근현대사 인데 이곳에서는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났을 때, 많은 토지들이 신고가 되지 않았으며, 조선 총독부는 이렇게 신고되지 않은 토지를 국유지로 만들었습니다."
라고 되어있다. 반면 기파랑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는
"무신고지로 국유지로 편입된 것은 주로 분묘지나 잡종지였는데, 도합 8944필지(0.05%)에 불과하였다.... (중략)..... 전체 토지의 40%에 달하는 무신고지가 발생하자 국유지로 몰수했다는 기존의 주장은 원래부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숨마쿰라우데가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를 요약-해설한 책임을 감안하면, 검인정교과서와 전문 역사서적의 사실관계 서술이 다른 셈인데..
사실 내가 경제사 전문가가 아니라 어느쪽이 옳은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심정적으로야 정확한 통계자료를 인용한 대안교과서쪽에 더 믿음이 가지만, 역시나 통계자료 분석의 오류가능성도 전혀 없는게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만약 교과서의 서술이 틀린 것이라면 큰 문제고, 반드시 시정될 필요가 있다. 수십만명의 고등학생이 잘못된 사실을 배우는 것은 문제 아니겠나.
# by | 2009/04/23 23:53 | 무거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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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토지의 면적에 이런 땅도 아마 포함이 되었을 거에요.
경제사학계에서(일각에서는 얘네들을 친일파라고 매도하기는 하지만) 기존 사학계가 제시한 수치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터져나오는 것으로 봐서는(관련 책을 찾아봤는데 경제사학계의 주장이 전혀 허황된 것도 아니더군요) 섣불리 기존 사학계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겠더군요..
그리고 책을 다 읽어본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안교과서가 일본인들의 토지 잠식 자체를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일본인 지주의 토지소유 증가, 소작인들의 권한 약화 등등 어쨌건 일본인들이 토지에 가진 영향력이 늘고 있다는 점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부분만 뚝 떼어서 놓으니 오해가 발생한 듯 합니다.
위엣분 잘못된 정보 운운은 최소한 해당 책을 읽거나 기본적인 사실을 인지한 다음에 하시져?
40% 수탈설의 신화가 통설처럼 받아들여져서 교과서에 실려있었던게 엄연한 사실인데 단지 신용하가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고 과잉반응 운운하시나여?
언급하신 정태원이나 정시연의 연구역시 미야지마나 조석곤, 배영순 등의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건데 ‘언급의 대상조차 꺼리고 운운’은 순전히 너님 생각이고요.
대표적으론 정시연 하나만 봐도 ‘신고주의에 의한 토지약탈성‘을 부인하는 조석곤의 견해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단지 근대적 토지소유의 개념이나 약 10% 정도였던 국유지 창출 과정에서의 수탈성 정도를 언급하고 있을 뿐인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