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조사사업의 진실

 오늘 근현대사의 토지조사사업을 공부하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지만,

 내가 쓰는 교재는 이룸이앤비의 숨마쿰라우데 근현대사 인데 이곳에서는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났을 때, 많은 토지들이 신고가 되지 않았으며, 조선 총독부는 이렇게 신고되지 않은 토지를 국유지로 만들었습니다."

 라고 되어있다. 반면 기파랑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는

 "무신고지로 국유지로 편입된 것은 주로 분묘지나 잡종지였는데, 도합 8944필지(0.05%)에 불과하였다.... (중략)..... 전체 토지의 40%에 달하는 무신고지가 발생하자 국유지로 몰수했다는 기존의 주장은 원래부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숨마쿰라우데가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를 요약-해설한 책임을 감안하면, 검인정교과서와 전문 역사서적의 사실관계 서술이 다른 셈인데..

 사실 내가 경제사 전문가가 아니라 어느쪽이 옳은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심정적으로야 정확한 통계자료를 인용한 대안교과서쪽에 더 믿음이 가지만, 역시나 통계자료 분석의 오류가능성도 전혀 없는게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만약 교과서의 서술이 틀린 것이라면 큰 문제고, 반드시 시정될 필요가 있다. 수십만명의 고등학생이 잘못된 사실을 배우는 것은 문제 아니겠나. 

by reske | 2009/04/23 23:53 | 무거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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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4/24 01:04
그 40%는 종래의 국유지/관유지가 모두 포함된 수치일 겁니다. 또한 소작인에게는 신고권이 없었고요. 게다가 중복신고가 되었을 때도 본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었고요. 즉, 궁방전을 소작하는 농민에게는 아예 신고할 자격도 없었습니다.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토지의 면적에 이런 땅도 아마 포함이 되었을 거에요.
Commented by reske at 2009/04/24 09:12
확실히 조선왕조가 소유했던 국유지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은 정황상 이해가 가지만..

경제사학계에서(일각에서는 얘네들을 친일파라고 매도하기는 하지만) 기존 사학계가 제시한 수치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터져나오는 것으로 봐서는(관련 책을 찾아봤는데 경제사학계의 주장이 전혀 허황된 것도 아니더군요) 섣불리 기존 사학계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겠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4/24 09:44
전혀 허황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대로 다 맞는 것도 아니죠. 생각외로 복잡합니다.
Commented by 解鳥語 at 2009/04/24 16:59
개인적으로 뉴라이트 교과서를 교과서라고 보지도 역사서라고 보지도 않아 읽어보지 못 한 입장이지만 포스팅에서 말하는 저런 서술 방식이 진짜인지 황당하네요. 기존 사학게에서 말하는 40%의 토지가 일제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주로 이를 비판하는 신용하(지금 학계에서도 비판받는 분이죠)까지도 무슨 민간사유지가 신고를 못해서 넘어간 토지가 40%라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40%라는 것은 미신고토지 뿐 아니라 당시 대한제구의 역둔토 궁방전 등 왕실소유의 토지를 포괄해서 장부상 국유지, 관유지로 기재되나 실재 민유지였던 지역의 소유권 분쟁, 이에 대한 영구적인 소작권을 가진 사람들의 소작권 박탈과 이를 통해 확보한 토지등 매우 광범위한 토지를 지칭합니다. 오히려 뉴라이트 교과서의 저런 서술이 사실이라면 뉴라이트 교과서가 심각하게 독자들에게 잘 못된 정보를 제공하며 왜곡하고 있군요. 토지조사사업의 폭력성을 말하며 흔히 미신고토지의 편입에 따른 분쟁사례를 언급합니다만 그것을 빌미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하며 한반도 토지의 대규모, 조직적으로 진행한 편입이란 사실 자체가 모두 근거가 없다는 예단을 내리는 근거없는 선동을 하고 있군요. 그 저의와 함께 비록 자신들의 목적이 역사학이 아닌 정치라고 하지만 그래도 학자인데 그 양심이 의심스럽습니다.
Commented by reske at 2009/04/24 19:27
글쎄요 신용하 교수의 책은 제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교과서에 한동안 전체 토지의(국유지가 아닌) 40%가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는 표현이 실려 있었고, 그게 어느 시점부턴가 시정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어본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안교과서가 일본인들의 토지 잠식 자체를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일본인 지주의 토지소유 증가, 소작인들의 권한 약화 등등 어쨌건 일본인들이 토지에 가진 영향력이 늘고 있다는 점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부분만 뚝 떼어서 놓으니 오해가 발생한 듯 합니다.
Commented by at 2009/04/24 17:14
40% 수탈설은 원래 실증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었고, 80년대 후반에 실제 사업자료를 바탕으로한 조석곤이나 배영순 등의 연구가 나온뒤로 학계에서는 쓰레기가 된지 오래입니다. 저 대안교과서의 기술이란건 학계의 연구결과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구요. 교과서에서도 이미 2002년인가 부터 40% 수탈설은 삭제되었고 대신 산림/임야의 국유지 편입문제만 서술되어 있습니다.

위엣분 잘못된 정보 운운은 최소한 해당 책을 읽거나 기본적인 사실을 인지한 다음에 하시져?
Commented by 解鳥語 at 2009/04/24 18:23
교과서의 신화를 비난하며 자신들의 편향적인 논점을 일반화 하며 선동하는 서술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드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용하의 저서에서도 무신고지가 전국토지의 40%에 달하자 이를 죄다 국유지 몰수 했다는 주장은 제가 독서가 부족한지 본적 없는 서술로 그의 저술에서 보이는 소규모 경작자의 배제와 대규모 국유지와 관유지 등의 편입을 통해 1930년 경에 결과적으로 40%에 달했다는 주장조차도 관련 없는 과잉반응이며 사학계의 주장이 이제 쓰레기가(?) 되었다고 하시며 경제학자인 조석곤과 배영순의 주장을 거론하시는데 사학계에서 아예 언급의 대상조차 삼기를 꺼리는 이영훈류의 이른바 경제사학도들의 주장을 하시려면 동시에 바로 비판하며 나온 정태원 이나 장시원, 최완규의 주장도 거론해야 그다음에 쓰레기 운운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닙니다. 그리고 실증의 근거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 또한 좀 표현이 그렇네요. 대한제국토지조사사업 연구에서 이미 이영훈이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의 논문에서 인용한 그 실증에 근거한 자료가 의도적으로 2차광무양안의 성과는 도외시하고 1차 광무양안의 부족한 부분을 강조해 일제의 사업성과와 논리적 연결을 시도한 실증이란 허상을 비판하고 있는점을 생각하면 뭐가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지 선 후가 바뀐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at 2009/04/24 23:40
이재무가 50년대에 신고주의에 의해 미신고된 토지가 일제에 의해 토지가 대량 약탈당했다고 주장한 뒤, 60년대에 민영규와 정형우에의해 그 주장이 40%로 ‘수정’ 돼서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져? 그리고 그 기술이 2001년까지 실려있었구요?
40% 수탈설의 신화가 통설처럼 받아들여져서 교과서에 실려있었던게 엄연한 사실인데 단지 신용하가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고 과잉반응 운운하시나여?
언급하신 정태원이나 정시연의 연구역시 미야지마나 조석곤, 배영순 등의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건데 ‘언급의 대상조차 꺼리고 운운’은 순전히 너님 생각이고요.
대표적으론 정시연 하나만 봐도 ‘신고주의에 의한 토지약탈성‘을 부인하는 조석곤의 견해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단지 근대적 토지소유의 개념이나 약 10% 정도였던 국유지 창출 과정에서의 수탈성 정도를 언급하고 있을 뿐인데여?
Commented by at 2009/04/24 23:49
환언하면 '신고주의에 입각해 불쌍하고 무식한 조선농민들이 신고하지 않은 토지 40%의 약탈'설을 현재 지지하고 있는 학자는 무식한 제가 알기로도 아무도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가 되었다는 말이었고요. 여기에 대해 불만 있으시면 아직도 그러한 주장을 고수하는 학자 이름을 좀 알려주시져. 제가 알기로 최근의 논의는 모두 궁장토 및 역둔토의 국유화나 사업 그 자체의 근대성 여부인것으로 아는데 말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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